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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09 / 에스겔 35장 5, 11절 / 한 맺힌 에돔, 그렇게 하신 이유가 있으리라

파리 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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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809 / 에스겔 35장 5, 11절 / 한 맺힌 에돔, 그렇게 하신 이유가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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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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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8월 9일 파리세움교회 주일설교 영상입니다. 많은 은혜가 되기를 바랍니다. 에돔은 얼마나 억울했을까? 에돔의 조상 에서는 분명 인간적으로 피해자라 할 만한 부분이 있었다. 야곱은 장자의 명분을 교묘한 속임수로 얻었고, 아버지 이삭을 속여 축복까지 가로챘다. 그러므로 에서의 분노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오늘 본문을 보면 에돔을 심판하시며 야곱의 잘못은 언급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에돔의 미움과 분노와 질투만을 책망하시는 것처럼 보인다. 성경에 말하는 에돔의 죄는 미움에서 시작되기보다 비교에서 시작되었다. 에서는 하나님보다 야곱을 더 오래 바라보았다. 야곱이 축복받는 모습과 부모의 뜻에 순종하는 모습을 보며 자신도 이스마엘의 딸을 아내로 맞았지만, 그것은 하나님께 나아온 행위가 아니라 야곱과 자신을 비교한 끝에 나온 행동이었다. 그 비교는 질투가 되었고, 질투는 미움이 되었으며, 미움은 오랜 원한으로 굳어졌다. 마침내 에돔은 형제의 고난을 기뻐하고 그의 기업을 탐하며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기에 이르렀다. 성경은 우리의 상처를 부정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우리의 눈물과 억울함을 아신다. 그러나 상처는 하나님께 가지고 갈 기도의 제목이지, 평생 붙들고 살아갈 정체성이 되어서는 안 된다. 에돔의 비극은 상처받은 데 있지 않고, 그 상처를 하나님께 맡기지 않은 데 있었다. 그는 “왜 야곱입니까?”라고만 물었을 뿐 “주님, 이 상황 속에서 저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라고 묻지 않았다. 하나님의 주권보다 인간의 불공평함을 더 오래 묵상한 결과, 그의 마음은 영원한 적개심으로 굳어졌다. 우리 역시 억울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만날 때가 있다. 그러나 그때 사람만 바라보면 비교(상처)는 질투가 되고, 질투는 미움이 되며, 미움은 원한으로 자란다. 나의 상처가 죄가 되는 순간은 상처가 생겼을 때가 아니라, 그 상처가 하나님보다 더 큰 삶의 기준이 될 때이다. 믿음은 모든 일을 이해하는 능력이 아니다. 이해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도 “그렇게 하신 이유가 있으리라”고 고백하며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오늘 나는 사람의 불의를 바라볼 것인가? 아니면 그 모든 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손을 바라볼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