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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이 내시 김처선을 죽이고 '처' 자까지 금지했다, 왕의 문밖 내관은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역사 속 행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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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이 내시 김처선을 죽이고 '처' 자까지 금지했다, 왕의 문밖 내관은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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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행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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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5년, 연산군은 늙은 내관 김처선을 죽이고, 그 이름에 든 '처(處)' 자를 온 나라 문서에서 못 쓰게 했습니다. 내관들의 목에는 "입은 화의 문이요, 혀는 몸을 베는 칼"이라 새긴 신언패가 걸려 있었습니다. 말하는 것도, 쓰는 것도 무서운 궁궐. 왕의 문밖을 지키던 한 내관의 눈으로 1504년부터 1506년 중종반정의 밤까지를 따라갑니다. 이 영상의 주인공 내관은 『연산군일기』 등 기록을 바탕으로 만든 가상의 인물입니다. 處 자 사용 금지, 신언패, 김처선의 죽음, 중종반정의 밤은 실록에 남은 사실입니다. 화면의 인물과 장면은 재구성입니다. 📜 참고한 자료 『연산군일기』 1504년 3월 13일 (신언패), 1505년 4월 1일 (김처선), 1505년 7월 19일 (處 자 금지) 『중종실록』 1506년 9월 2일 (중종반정)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sillok.history.go.kr) #연산군 #조선역사 #김처선 #신언패 #한국사 #역사속행인